Vietnam Archive·

베트남 최고 등급 유적, 떠이티엔 국모 사당 —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국가특별유적으로 지정된 떠이티엔 국모 사당을 비 그친 늦은 오후에 걸은 기록. 관광객이 아니라 기도하러 온 사람들, 그리고 안내방송 한 번에 다 같이 뛴 마지막 케이블카.

베트남 최고 등급 유적, 떠이티엔 국모 사당 —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빗속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다음 이야기다.

산 위에 내렸을 때는 비가 거의 그쳐 있었다. 대신 모든 게 물을 머금고 있었다. 기와도, 돌계단도, 뒤로 이어지는 숲도.

국모를 모신 곳

돌계단을 올라가면 정면에 본전이 나온다.

붉은 기둥과 기와지붕의 본전, 앞마당에 금귤 화분과 큰 향로가 놓여 있다

처마 아래 금색 현판에 이렇게 적혀 있다.

ĐỀN THỜ QUỐC MẪU TÂY THIÊN

떠이티엔 국모(國母)를 모시는 사당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đền은 불교 사찰(chùa)이 아니라 신을 모시는 사당을 가리킨다. 이전 편에서 떠이티엔이 베트남의 성모 신앙(Đạo Mẫu)이 강하게 남은 곳이라고 적었는데, 그건 돌아와서 찾아본 이야기였다. 이 현판은 그 자리에 실제로 걸려 있는 글자다.

바로 아래 붉은 현수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KÍNH CHÀO QUÝ KHÁCH ĐẾN VỚI KHU DI TÍCH QUỐC GIA ĐẶC BIỆT TÂY THIÊN!

‘떠이티엔 특별국가유적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Di tích quốc gia đặc biệt은 베트남 문화유산 등급 중 가장 높은 단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젖은 마당에 베트남 국기와 마름모꼴 오색 깃발이 나란히 걸려 있다

마당에는 베트남 국기와 함께 마름모꼴 오색 깃발이 나란히 서 있었다. 계단 아래에는 커다란 청동 향로, 그 양옆으로 열매가 달린 금귤 화분과 노란 국화.

붉은 등롱이 처마를 따라 줄지어 걸려 있고, 한쪽 구석에는 QR 코드가 붙은 안내판도 서 있다.

비가 그친 뒤

산으로 둘러싸인 사당 구역의 기와지붕들을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이곳이 건물 하나가 아니라는 게 보인다.

기와지붕들이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놓여 있고, 그 사이를 젖은 돌길이 잇는다. 뒤로는 산이 바로 이어지고, 능선에는 비가 지나간 뒤의 옅은 안개가 아직 걸려 있었다.

맑은 날이었다면 산과 지붕이 훨씬 선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날이 좋았다. 젖은 돌바닥 위로 깃발 색이 비쳤고, 공기가 무거웠다.

도시에서 관광지를 찾아온 느낌보다는, 산속에 오래전부터 있던 곳에 걸어 들어온 느낌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러 온 게 아니었다

조금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이 관광객을 위해 만든 장소가 아니라는 게 금방 보인다.

사람들은 사진 몇 장 찍고 내려가지 않았다. 향을 피우고, 가족끼리 차례를 지켜 가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도, 부모님을 모시고 온 사람도 있었다.

베트남을 여러 번 다니면서 사원은 많이 봤지만,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 신자들이 중심인 자리에 혼자 섞여 있는 건 좀 달랐다.

사당 뒤로 5분 — 사진이 없는 곳

사실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여기가 아니다.

본전을 지나 산길을 따라 5분쯤 더 올라가면, 숲속에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따로 나온다. 시설이랄 게 없다. 나무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은 자리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이 거기까지 올라와 기도를 한다.

사진을 찍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도 그냥 카메라를 내렸다.

그래서 이 기록에는 그곳 사진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찍지 않은 그곳이 제일 오래 남았다.

사람이 사라진 늦은 오후

시간이 늦어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내려가기 시작했다.

양옆에 오색 깃발이 늘어선 비에 젖은 돌계단이 아래로 길게 이어진다

거의 비어버린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물이 고인 돌바닥이 하늘을 그대로 비추고, 양옆으로 오색 깃발이 젖은 채 늘어져 있었다.

낮에 사람이 많았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장소 같았다.

붉은 등롱이 걸린 처마와 오색 깃발이 늘어선 젖은 돌길, 아무도 없다

건물 사이를 잇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처마마다 붉은 등롱이 걸려 있고, 길 양옆으로는 톱니 모양 오색 깃발이 죽 서 있는데 그 사이를 걷는 사람이 없다. 젖은 돌바닥이 지붕과 깃발을 그대로 되비추고, 뒤로는 산이 바로 붙어 있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이 이번 떠이티엔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들이다. 사람이 가득한 관광지보다, 사람들이 떠난 뒤에 남아 있는 장소를 보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스름한 하늘 아래 석대 위에 놓인 청화 무늬 화병들과 붉은 양동이

빛이 빠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석대 위에는 청화 무늬 화병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그 옆으로 붉은 양동이와 흰 통. 앙상한 큰 나무 두 그루가 하늘에 실루엣으로만 남았다.

그 뒤로 화살표가 달린 붉은 표지판이 보인다.

LẦU HÓA SỚ

소문(疏文)을 태우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sớ는 신에게 올리는 글을 적은 종이고, hóa는 그걸 태우는 일을 가리킨다. 기도를 드린 뒤 적어 올린 글을 불에 태워 보내는 자리가 따로 있고, 그리로 가라고 화살표까지 세워둔 것이다.

관람 동선이 아니라 의식 동선을 안내하는 표지판이다. 이런 게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기가 어떤 곳인지 설명이 된다.

낮에 봤던 그 붉고 노란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들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유 부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디선가 안내방송이 나왔다.

베트남어라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못 알아들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뛰지?’ 하고 보고만 있었다. ㅋㅋㅋ

뭔가 이상해서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더니 — 마지막 케이블카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같이 뛰었다. ㅋㅋㅋㅋ

조금 전까지 젖은 사당을 감상하며 셔터를 누르던 외국인 한 명이, 갑자기 현지인들 틈에 껴서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전력질주.

무사히 탔다. 그리고 그 마지막 편에 탄 사람은 나까지 합쳐 일곱 명쯤이었다.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던 날

케이블카가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밖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조금 전까지 걷던 지붕들과 숲이 아래로 멀어지고, 산에 저녁빛이 내려앉았다.

생각해 보면 이날은 계획대로 된 게 별로 없다. 비가 많이 왔고, 케이블카는 30분 늦게 움직였고, 마지막에는 놓칠까 봐 뛰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고 나면 이런 날이 더 잘 기억난다.

비가 그친 뒤의 젖은 사당, 가족과 함께 기도하러 온 사람들, 사진을 못 찍은 숲속 기도 자리. 그리고 마지막 케이블카를 타겠다고 산속에서 같이 뛰었던 일까지. ㅋㅋㅋ

떠이티엔은 유명한 관광지를 하나 더 봤다는 느낌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적인 신앙 공간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하루로 남았다.

방문 기록
날짜 2024년 5월 21일 (비 그친 늦은 오후)
장소 떠이티엔 국모 사당 · 빈푹 떠이티엔
가는 길 케이블카 (그날 30분 늦게 움직였다)
날씨 비가 거의 그친 뒤 · 능선에 옅은 안개
본 것 현판 ĐỀN THỜ QUỐC MẪU TÂY THIÊN · 특별국가유적지구 환영 현수막 · LẦU HÓA SỚ 표지판
내려온 길 안내방송 뒤 뛰어서 탄 마지막 케이블카
안 적은 것 사당 뒤 숲속 기도 자리 사진 · 안내방송 내용 · 금액 기록 없음

📍 Tây Thiên, Vĩnh Phúc, Vietnam · 2024년 5월 21일


이 글은 Vietnam Archive 시리즈 20편입니다. 이전 편은 비 내리던 떠이티엔, 케이블카를 타고 산속으로이고, 다음 편은 캐슈넛은 이 작은 꽃에서 시작된다입니다. 관광지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직접 만난 거리, 음식, 카페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짧은 사진 기록은 틱톡 @the8842과 인스타그램 @michaelhan1004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