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 올라가서야 보였던 제주 — 정상보다 기억에 남은 건 바람이었다
가족과 함께 오른 성산일출봉. 오르는 길의 노란 꽃밭과 조랑말, 올라갈수록 넓어지던 바다, 그리고 정상에서 맞은 시원한 바닷바람. 오래된 사진 한 장에 남은 제주.

성산일출봉을 찾았던 날은 가족과 함께였다.
일출봉 근처에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 뒤, 성산일출봉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 갈 때
멀리서 바라볼 때의 성산일출봉은 하나의 거대한 봉우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직접 가까이 다가가 걷기 시작하면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오르는 길 주변에는 넓게 펼쳐진 꽃밭들이 있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히 모든 꽃의 종류까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노란색이 강했던 모습 때문에 유채꽃으로 기억하고 있다. 초록빛 들판과 노란 꽃밭, 그 뒤로 솟아 있는 성산일출봉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풍경은 제주다운 장면 중 하나였다.
중간에는 조랑말을 탈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제주에서 흔히 떠올리는 조랑말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말을 타고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작은 포토스팟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처럼 관광지마다 정형화된 포토존이 많지 않던 때라, 오히려 그런 소박한 풍경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올라갈수록 바다가 열린다
성산일출봉은 아래에서 볼 때와 직접 올라갔을 때의 인상이 확실히 다르다.
계단과 경사진 길을 따라 조금씩 높이가 올라갈수록, 뒤쪽으로 펼쳐지는 바다의 범위도 점점 넓어진다.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해안선이 열리고, 성산 주변의 들판과 마을이 아래쪽으로 작게 내려다보이기 시작한다.
봉우리의 한쪽 사면은 풀로 덮여 있다가, 아래에서 검은 바위 절벽으로 바뀌어 바다로 곧장 떨어진다. 그 너머 바다 위로는 지나가는 배 한 척이 흰 물살을 길게 그리며 가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그 배가 아주 작게 보여서, 절벽의 높이와 바다의 크기가 그 한 척으로 실감이 났다.
정상에서 가장 먼저, 바람
오르는 동안에는 햇빛도 강했고 제법 힘이 들었다.
하지만 높은 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기억에 남은 것은 전망보다 바람이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과 옷깃을 스치면서, 올라오는 동안 났던 땀을 빠르게 식혀줬다. 당시에는 그저 시원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사진을 다시 보면 그 바람의 느낌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떠오른다.
화산섬이라는 게 실감났다
정상부에 가까워질수록 성산일출봉의 지형도 더 분명하게 보였다. 한쪽으로는 넓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다른 쪽으로는 일출봉 특유의 거대한 분화구와 능선이 이어진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하나의 봉우리가, 위에 올라서면 전혀 다른 형태의 지형으로 보인다.
바다와 절벽, 초록빛 능선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제주가 화산섬이라는 사실이 훨씬 실감났다.
특히 높은 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평지에서 보던 제주 바다와 느낌이 달랐다. 수평선은 훨씬 멀리 이어지고, 바로 아래쪽의 절벽과 해안선이 함께 보여 공간의 깊이가 크게 느껴졌다. 날씨가 좋았던 덕분인지 시야도 비교적 넓게 트여 있었고, 한동안 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사진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
사진으로 보면 그저 오래된 관광지 사진 한 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족과 함께 근처에서 밥을 먹고, 꽃밭 사이를 지나고, 조랑말이 있던 길을 거쳐 직접 정상까지 올라갔던 하루가 함께 남아 있는 사진이다.
요즘은 훨씬 좋은 카메라와 드론으로 촬영한 성산일출봉의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도 오래된 내 사진을 다시 꺼내보면, 그때의 장면은 다른 방식으로 기억된다.
사진의 화질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노란 꽃밭이었고, 계단을 오르며 느꼈던 조금의 피로였고, 무엇보다 정상에서 맞았던 제주의 시원한 바람이었다. 성산일출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어쩌면 정상의 풍경보다 그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제주 성산일출봉
| 방문 기록 | |
|---|---|
| 지역 | 제주 성산일출봉 |
| 본 것 | 오르는 길의 노란 꽃밭(유채로 기억)·조랑말, 정상에서 내려다본 절벽·해안선, 분화구와 능선 |
| 인상 | 정상 풍경보다, 바다에서 올라오던 시원한 바람 |
| 함께 | 가족과 함께 (근처에서 식사 후 정상까지) |
| 방문 | 오래전 (정확한 시기는 사진과 함께 대부분 사라짐) |
이 글은 Korea Archive 시리즈 11편입니다. 이전 편은 영종도 차덕분, 다음 편은 제주 씨에스호텔입니다. 국내에서 직접 다닌 섬, 바다, 거리와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짧은 사진 기록은 틱톡 @the8842과 인스타그램 @michaelhan1004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