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내장산, 할아버지가 심은 감나무 — 우리 학비였던 감을 이제 아무도 따지 않는다
2024년 12월 내장산. 조각공원 앞 호수에 비친 서래봉 능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가 심은 감나무는 우리 식량이자 학비였는데, 이제 지붕을 덮은 채 아무도 따지 않는다.

내장산 하면 보통 단풍을 먼저 떠올린다. 10월 말에서 11월 초, 주차장이 몇 시간씩 밀린다는 그 산이다.
내가 간 건 12월 20일이었다. 단풍은 이미 다 지고, 그 인파도 같이 사라진 뒤였다.
오후 5시 1분, 도로 옆에 차를 세웠다
내장산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할 무렵이었다. 차를 세운 건 내장산조각공원 앞이었다.
이 자리의 구조가 편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호수, 반대쪽은 조각공원이다. 그리고 그 도로변에 바로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주차장을 찾아 한참 돌거나 입구에서 걸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몇 걸음이면 호수고, 몸을 돌리면 산이다. 호수 쪽은 산책할 수 있도록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었다.
12월의 내장산은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체감온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이날도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그런데 공기와 달리 풍경은 꽤 차분했다. 해가 산 뒤로 내려가면서 하늘에 남아 있던 빛이 호수 위로 번졌다. 바람은 매서운데 수면은 거의 흔들리지 않아서, 구름과 산 능선이 물에 그대로 한 번 더 그려졌다. 물가에는 누군가 꽂아둔 바람개비 몇 개가 서 있었다(맨 위 사진).
여름이나 단풍철처럼 색이 화려한 풍경은 아니다. 대신 사람이 거의 없다. 겨울 내장산의 정적인 분위기는 그 비어 있음에서 나온다.
몸을 돌리면 산세가 통째로 보인다

호수를 등지면 조각공원과 그 뒤로 서래봉 쪽 능선이 보인다. 톱날처럼 각진 그 봉우리가 정면으로 들어온다. 내장산 하면 보통 내장사나 단풍터널 같은 안쪽을 떠올리는데, 이 자리는 조금 떨어져서 산세를 통째로 바라보는 쪽이다. 안쪽에서는 나오지 않는 그림이다.

조금 더 있으니 해가 거의 넘어갔다. 넓은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가 심은 감나무
이튿날 아침, 머문 곳 주변을 걸었다. 시각은 8시 40분 무렵. 전날 저녁보다 공기가 더 차가웠고,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날카로웠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감나무였다.

이 나무는 나에게 처음 보는 나무가 아니다.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다. 내가 어릴 때 이미 큰 나무였고, 지금은 처마를 넘어 지붕을 온전히 덮고 있다.
그리고 이 나무는 한때 우리 식량이었고, 우리 학비였다. 여기서 딴 감을 내다 팔았다.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농산물 도매시장에 갔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잎은 이미 대부분 떨어졌는데, 가지 끝에는 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몇 개가 아니라 나무가 통째로 그랬다.
이제는 따지 않는다. 학비를 대주던 나무에 감이 저렇게 매달린 채로 겨울을 난다. 앙상한 가지와 겨울 하늘 사이에 그 색만 남아 있으니 계절감이 오히려 더 또렷했다.
누가 일부러 만들어둔 관광 풍경이 아니다. 그냥 오래 거기 있던 나무다. 그런데 이런 게 유명한 전망대보다 나중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날 점심은 태인의 떡갈비집이었다. 어머니 생신이라 모인 자리였고, 이 여행은 거기서 마무리됐다.
잠깐 들르기 좋은 이유
여기는 따로 긴 일정을 잡고 찾아가는 장소는 아니다. 내장산 동선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기 좋은 곳에 가깝다.
- 도로 바로 옆에 차를 세울 수 있다 (걸어 들어갈 필요 없음)
- 내려서 호수와 조각공원 주변을 짧게 걸을 수 있다
- 내장사 안쪽과는 전혀 다른 각도로 서래봉 쪽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 해 질 무렵이면 호수 반영과 능선을 같이 볼 수 있다
- 비수기에는 사람이 훨씬 적다
12월에 갔던 나는 예쁜 풍경보다도 차가운 바람, 조용한 호수, 그리고 아무도 따지 않는 감나무가 더 기억에 남았다.
📍 전북 정읍 내장산조각공원 앞 호수
| 방문 기록 | |
|---|---|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 일원 |
| 본 것 | 호수에 비친 구름·서래봉 능선, 물가 바람개비, 조각공원과 조형물 |
| 감나무 |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 한때 식량이자 학비였고, 지금은 지붕을 덮은 채 수확하지 않는다 |
| 주차 | 도로변에 바로 주차 · 조각공원 앞 주차장 |
| 방문 | 2024년 12월 20일 오후 5시 / 21일 오전 8시 40분 무렵 (겨울, 비수기) |
| 이어서 | 같은 날 낮, 태인 백학정에서 어머니 생신 가족 식사 |
이 글은 Korea Archive 시리즈 18편입니다. 이전 편은 청라 구수옥설렁탕입니다. 국내에서 직접 다닌 섬, 바다, 산과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짧은 사진 기록은 틱톡 @the8842과 인스타그램 @michaelhan1004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