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 50,000동, 그리고 사라진 900달러 — 하노이 호안끼엠과 응옥선 사원
한여름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와 테훅교, 응옥선 사원을 걸은 기록. 사원 입장료는 성인 50,000동이었고, 그날 호숫가에서 일행이 현금 900달러가 든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렸습니다.

하노이에 여러 번 와도 이상하게 다시 걷게 되는 곳이 있다.
호안끼엠 호수(Hồ Hoàn Kiếm).
하노이 올드쿼터 바로 옆에 자리한 이 호수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여행자와 현지인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침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호수를 돌고, 낮에는 여행객들이 오가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간다.
호수 건너편으로는 고층 건물과 공사 크레인이 보이고, 물 한가운데 섬에는 베트남 국기가 걸려 있다. 도심 한복판이라는 게 물에 비친 스카이라인으로 바로 드러난다.
이날도 그랬다. 다만 한 가지, 정말 더웠다.
부채질하는 사람들은 거의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도 여름이면 덥다. 그런데 하노이에서 한낮에 걸어다니면 더위가 조금 다르게 온다. 가만히 있어도 덥고, 몇 분만 걸으면 금방 땀이 난다.
그날 호숫가를 걷는 사람들을 보다가 재미있는 걸 하나 봤다. 손에 부채를 들고 계속 부채질하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거의 한국 사람들이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은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다녔다. 다만 한여름 하노이에서 손선풍기는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뜨거운 공기를 얼굴 쪽으로 밀어주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계속 들고 다녔다.
그늘이 나오면 속도가 느려졌다
호숫가에는 큰 나무가 많다. 햇빛 아래를 걷다가 그늘에 들어가면 확실히 낫다.

그래서 어디를 향해 빠르게 걷기보다, 그늘이 나오면 천천히 걷고 벤치나 난간이 보이면 잠깐 멈췄다.
호숫가 난간은 돌로 만들어졌는데, 가운데 판마다 붉은색과 초록색을 넣은 문양이 박혀 있다. 바닥은 붉은 전돌이고, 그 위로 화분과 가로등, 전선을 매단 기둥이 서 있다.
호안끼엠의 매력은 사실 특별한 목적지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호수를 따라 걷고, 그늘에서 쉬고, 마음에 드는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고, 골목을 기웃거리다 다시 호수로 돌아온다.
걷다 보면 계속 뭔가가 튀어나온다
이런 날에는 발도 금방 피곤해진다. 골목을 지나는데 신발가게가 보였고, 매장 앞에 슬리퍼가 진열돼 있었다.
오래 걷다 보면 갑자기 이런 게 눈에 들어온다. 좋은 운동화를 신고 나왔어도 그냥 슬리퍼가 편하겠다 싶어진다. 뭘 사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잠깐 멈춰 구경하고 또 걸었다.
더우니 차가운 것도 계속 찾게 된다. 길에서 아이스음료를 사고,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 먹는다. 거창한 먹거리 체험이 아니라 그냥 더워서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이런 사소한 소비가 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유명한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 한낮 길거리에서 사 먹은 찬 음료 한 잔이 더 반가울 때가 있다.
인생네컷이 여기까지 와 있었다
걷다가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인생네컷.
한국에서 시작한 셀프사진 브랜드가 베트남에 들어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하노이 구시가지 한복판에서 직접 매장을 보니 체감이 달랐다. 한국 젊은 사람들의 사진 문화가 여기 상권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모습이 재미있었다.
우리도 찍을까? 잠깐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나이 든 남자들이다. 들어가서 포즈 잡고 네 컷 찍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봤다. 어색하다. 너무 어색하다. 그래서 앞에서 구경만 하고 지나갔다.
붉은 다리 하나
호수 북쪽으로 걷다 보면 나무 사이로 붉은색 다리가 보인다.
테훅교(Cầu Thê Húc).

호수 안의 작은 섬인 응옥섬(Đảo Ngọc)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다. 그리고 이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곳이, 내가 이름을 계속 못 외워서 “응옥… 거시기”라고 부르던 그곳이다. 😂
바로 응옥선 사원(Đền Ngọc Sơn).
다리는 생각보다 짧다. 나무 난간에 붉은 칠을 한 아치형 다리이고, 사람 몇이 지나가면 꽉 차는 폭이다. 멀리서 보면 초록 일색인 호수 풍경에서 이 붉은색만 툭 튀어나온다.
다리를 건너면
붉은 다리를 건너 안으로 들어가면 호수 밖의 복잡한 분위기가 조금씩 사라진다.

깨진 돌을 맞춰 깐 길이 완만하게 휘어 오르고, 양옆으로 회색 석조 난간이 이어진다. 난간 끝에는 봉우리 모양 석주가 서 있고, 그 사이 석판에 붉은 글씨로 한자가 새겨져 있다. 난간 위로는 화분이 얹혀 있고, 머리 위는 나뭇가지가 낮게 덮어 한낮인데도 길에 그늘무늬가 깔린다.
몇 분 전까지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섞이던 하노이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 잠시 잊힌다.

건물은 검은 기와를 얹고 짙은 붉은색 나무문을 달았다. 흰 기둥에는 한자 주련이 세로로 붙어 있다. 마당은 붉은 전돌을 깔았고, 연꽃을 심은 화분과 항아리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화려한 관광지라기보다 규모가 크지 않은 전통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응옥선 사원 하나만 따로 보기보다 호안끼엠 호수 산책 → 테훅교 → 응옥선 사원을 하나의 코스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다.
입장료 50,000동
응옥선 사원은 입장료가 있다. 성인 1인 50,000 VND. 표를 사서 들어갔다.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 돈으로 3천 원이 안 되는 수준이다. 호수를 걷는 건 무료니까, 사원까지 들어갈지만 정하면 된다.
그러니까 내가 계속 못 외우던 “응옥 거시기 입장료 얼마였지?“의 답은 50,000동이었다. ㅋㅋ
(찾아보니 특정 무료개방일에는 요금이 면제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요금과 운영 방식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에 한 번 확인하시는 게 좋겠다.)
그런데 이날의 진짜 기억은 따로 있다
바로 여기다.

사진만 보면 평화로운 호안끼엠의 어느 오후다. 굵은 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로 사람들이 흩어져 서 있고, 흰 구슬 세 개를 단 검은 가로등이 물가에 서 있다. 화단 옆 노란 상자 위에는 생수병과 캔이 올라가 있고, 호수 건너편으로는 BIDV 건물과 노란 깃발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같이 여행하던 지인이 지갑을 잃어버렸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 넣어뒀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처음에는 어디 다른 주머니에 넣은 거 아니야? 하면서 확인했다. 가방을 다시 열고, 주머니를 보고, 지나온 곳도 되짚었다. 없었다.
$900현금. 그리고 신용카드, 각종 카드, 지갑까지 전부.
ㅋㅋㅋㅋㅋㅋ
웃을 일이 아닌데 지나고 나서 이야기하니 웃음부터 나온다. 당시에는 정말 난감했다. 해외에서 현금만 잃어도 큰일인데 카드까지 같이 사라졌다.
혹시 떨어뜨렸는지, 누가 주워서 가져다주지는 않았는지 주변을 계속 확인하고 기다렸다. 결국 찾지 못했다.
그리고 시작된 강제 절약 여행
현금 900달러도 문제였지만 진짜 불편한 건 카드를 전부 잃은 것이었다. 그 뒤 일정 동안 자연스럽게 소비를 줄여야 했다.
그리고 나는 뜻하지 않게 한동안 여행 경비 담당자가 됐다. 누가 밥값을 내고, 누가 차비를 내고, 얼마 남았는지를 계속 생각해야 하는 여행. 원래 계획에는 없던 역할이었다. 😂
그래서 이 호수를 떠올리면 풍경보다 먼저 나오는 문장이 있다.
“아… 여기서 900달러 잃어버렸지.”
다시 간다면, 가방은 앞으로
지금 다시 가도 아마 또 걷게 될 것 같다. 호안끼엠은 그런 곳이다. 한 번 보고 끝나는 관광지라기보다 하노이에 오면 자연스럽게 다시 지나게 되는 곳.
대신 한여름 한낮이라면 조금 더 천천히 걸을 것 같다. 그리고 가방은 앞으로 메고. 현금 900달러가 든 지갑을 등에 메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
여행 사진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유명한 장소와 멋진 풍경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사건들이 그 장소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그날의 온도, 같이 걸었던 사람들, 길에서 사 먹은 음료, 쓸데없이 구경한 슬리퍼, 인생네컷 앞에서 그냥 지나친 것, 그리고 지갑을 찾느라 호숫가를 계속 뒤졌던 일. 그런 것들이 전부 섞여 있다.
📍 Hoàn Kiếm, Hà Nội, Vietnam
| 방문 기록 | |
|---|---|
| 지역 | 하노이 호안끼엠 — 호수 · 테훅교 · 응옥선 사원 |
| 시기 | 2025년의 한여름 낮 |
| 코스 | 호수 산책 → 테훅교 → 응옥선 사원 (사원만 따로 보기보다 이 순서가 자연스럽다) |
| 입장료 | 응옥선 사원 성인 50,000 VND · 호수 산책은 무료 |
| 더위 대응 | 손선풍기(뜨거운 바람이 온다) · 그늘마다 멈춤 · 길거리 아이스음료·아이스크림 |
| 본 것 | 부채질하는 사람들이 거의 한국인이었다 · 슬리퍼 가게 · 인생네컷 매장 |
| 🔴 그날의 사건 | 일행이 지갑 분실 — 현금 900달러 + 신용카드 + 각종 카드 전부. 등에 멘 가방에서 사라졌고 못 찾았다 |
| 그 뒤 | 강제 절약 여행 · 저자가 여행 경비 담당이 됐다 |
| 안 적은 것 | 정확한 날짜 · 분실 시각 · 일행의 신원 — 적지 않는다 |
이 글은 Vietnam Archive 시리즈 10편입니다. 이전 편은 호안끼엠 주변을 걷다이고, 다음 편은 하노이 Festival Phở 2025입니다. 관광지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직접 만난 거리, 음식, 카페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짧은 사진 기록은 틱톡 @the8842과 인스타그램 @michaelhan1004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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